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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커피의 숨겨진 역사

[출처] 이길상. (2021).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 고찰. 한국커피문화연구, 7(1), 1-46.

안녕하세요, 여러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사랑하는 블로거, 올어커입니다! ☕️

오늘 아침에도 습관처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리셨나요? 우리나라는 성인 1인당 연간 약 353잔의 커피를 마실 정도로 세계적인 커피 사랑을 보여주고 있죠. 커피 전문점 시장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일 정도예요.

이렇게 커피를 사랑하는 한국이지만, 우리가 이 음료를 언제, 어떻게 처음 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아리송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를 통해 커피(당시 ‘가배’ 또는 ‘양탕국’)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했죠.

하지만 오늘,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을 통째로 바꾼 흥미로운 최신 연구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무려 고종 황제가 커피를 마셨다고 알려진 시기보다 35년이나 앞선, 1861년 조선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 고종보다 35년 먼저, 1861년에 도착한 조선의 첫 커피!

1. 극심한 위기 속에서 시작된 ‘커피 주문’ (1860년)

오랫동안 한국 커피 역사의 시작점은 1880년대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나 1890년대 고종 황제의 이야기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 논문은 기존의 주장을 뒤엎는 새로운 문서를 발굴했어요.

바로 1860년(철종 11년) 3월 6일, 조선 천주교를 이끌던 프랑스 신부 시메옹 베르뇌 주교가 홍콩에 있는 동료 신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조선은 상황이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콜레라 전염병(팬데믹)이 창궐하고 있었고, 천주교 박해가 다시 시작되던 위기의 시기였죠. 베르뇌 주교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선교 활동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홍콩에 요청했는데, 놀랍게도 그 목록에 “커피 40 리브르“와 “흑설탕 100 리브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리브르는 당시 프랑스에서 사용하던 무게 단위로, 40 리브르는 약 18.14kg에 달하는 양입니다.

2. 한양 남대문 밖으로 ‘은밀히 배달된’ 커피 (1861년 4월 7일)

베르뇌 주교의 간절한 주문은 바로 다음 해에 조선 땅에 도착했습니다.

주문 후 정확히 1년 1개월 1일이 지난 1861년 4월 7일 새벽 5시경, 네 명의 젊은 프랑스 신부(랑드르, 조안노, 리델, 칼레 신부)가 베르뇌 주교가 머물던 한양의 은신처로 이 짐 꾸러미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조선 최초의 커피 도착지는 한양 남대문 밖 자암(紫巖) 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의 서울 봉래동과 순화동이 만나는 의주로 부근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오가는 칠패시장 근처라 눈에 띄지 않고 이동하기에 적합했죠.

베르뇌 주교는 이 기다리던 커피 덕분에 힘든 조선에서의 여름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감사 서신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3. 커피는 선교를 위한 ‘소박한 위로’였다

베르뇌 주교는 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종교 의식에 필요한 성물이 아닌 커피를 그렇게 많이 주문했을까요?

첫째, 개인적인 기호품: 베르뇌 주교는 조선에 오기 전부터 커피를 매우 좋아했으며, 심지어 “우유를 넣은 커피“를 최고의 축복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당시 연한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둘째, 질병 치료 목적: 19세기 중반에는 커피가 두통을 포함한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콜레라 팬데믹 속에서 커피가 불안한 심신 상태를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는 바람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셋째, 선교 활동의 윤활유: 가장 주목할 만한 해석은, 베르뇌 주교가 커피를 선교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 여겼을 가능성입니다.

선교사들이 주문했던 40 리브르 (18.14kg)의 커피 원두는 당시 커피 한 잔에 4~5g을 사용했던 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4,500잔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조선에 있던 프랑스 신부가 10명 남짓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커피를 선교사들만 다 마시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는 곧 선교사들 주변의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이 커피를 함께 마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숭늉의 쓴맛에 익숙했던 조선인들에게 설탕을 듬뿍 탄 달콤한 커피는 오히려 거부감 없이 친숙하게 다가갔을 수 있습니다. 베르뇌 주교가 자신이 마신 이 달콤한 커피를 프랑스어로 “소박한 감미제(petites douceurs)”라고 표현한 것에서도 당시 커피가 힘든 생활 속에서 주는 위로이자 기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역사적 의미: 조선 커피 기원의 새로운 페이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확인 가능한 한국 최초의 커피 음용자 집단은 1861년 4월 7일 아침, 베르뇌 주교와 그에게 커피를 전달한 네 명의 프랑스 신부, 그리고 이들을 위해 커피를 끓였을 조선인 신자들입니다.

이처럼 커피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먼저 마셨나’를 따지는 것을 넘어섭니다.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 서양 문물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우리 땅에 들어왔는지 그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커피는 아마도 마카오나 홍콩을 거쳐 네덜란드령 자바섬 등 동인도 지역에서 온 커피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 생각: 역사는 정지된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자료가 발견될 때마다 계속해서 해석되고 쓰여지는 이야기 같아요. 우리가 즐기는 ‘오늘의 커피’는 160여 년 전, 콜레라와 박해 속에서 한 프랑스 신부가 힘든 조선의 여름을 버티기 위해 주문했던 ‘소박한 감미제’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마치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던 사람들의 손에 들린 작은 촛불처럼, 조선의 첫 커피는 그렇게 우리 역사에 스며들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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